2013년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최연소 공중보건위생국장으로 임명한 비벡 H. 머시(Vivek Murthy)는 외로움은 신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질병이라고 규정했다. 브링햄 대학 연구팀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기대 수명보다 빨리 사망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50%나 더 높다는 결과를 발표하며 외로움(loneness)이 사람의 수명을 감소시킨다고 주장했다.
가정이 해체되고 디지털 미디어로 대면접촉이 확연히 줄어든 우리의 삶은 깊은 공감능력이 부족해지고 외로움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편리한 디지털 기술의 어두운 한 단면이다.
그러나 외로움 자체를 질병이라 규정해버렸을 때, 문제는 없을까? 미래세대가 외로움을 느끼는 뇌 어딘가에 자극을 주고, 외로움을 달래는 약물을 복용하는 등 신체적인 질병과 동일한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일까? 외로움이 질병이면, 절망감은? 열등감은? 다른 부정적인 감정들도 같은 꼬리표를 가질 자격이 없는가?

외로움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외로움이 해결되지 않고 고통이 되어 나 자신을 파괴하기 시작했을 때 분명 전문가의 치료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외로움은 ‘인간관계’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고마운 도구다. 외로움은 ‘나’ 자신과 독대하는 시간이다. 내 주변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함께 웃고 있어도 우리는 외로움을 느끼는 존재이다. 그 누구도 내 머리카락을 셀 수 있을 정도로 잘 알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자각이다. 사랑을 갈구하나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철저히 깨닫는 시간이다.

그러나 비로소, 아주 오래 전 끊어진 관계가 등불을 켜고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아시고, 목숨을 버리는 사랑만큼 온전히 사랑하시는 이가 부르시는 순간이다. 내가 회복해야 하는 것은, 인간관계가 아니다. 마른 샘물에 아무리 물을 부어도 금새 말라버린다. 우리는 원천을 회복해야한다.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그 분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나와 관계된 모든 이와의 관계가 회복되는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지면, 내게는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는 용기와 희생과 용서의 샘물이 마르지 않는 것이다.
외로움은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축복이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통로이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방법이다.

외로움을 느끼는가? 지금이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는 순간이다. 순간적으로 허물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갈구하는 마음으로 회복될 수 있는 감사한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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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연약하여 감사하다
네가 연약하여 감사하다
깨어질 나이기에,
깨어질 너이기에 소망이 있다.

내가 연약하므로 네가 간절하고,
네가 연약하므로 내가 비로소 쓰임이 있다.

우리가 연약하므로 주님이 일하시고,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고 강해진다.

연약하지 않았더라면 서로가 간절하지 않았고,
더이상 사랑이 필요치 않았으리라.
사랑이신 그 분의 존재를 가늠조차 못했으리라.

연약함은 ‘나’ 라는 세계에 대한 초대장.
황량한 사막에서 홀로 외로운
내 안에 당신이 들어올 수 있는 사랑의 통로,
눈물의 열쇠